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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영화 데몰리션 - 상실이라는 이름

by 2021. 11. 18.

영화 데몰리션 / 상실이라는 이름

영화 데몰리션은 2016년 작품입니다. 2번 봤지만 넷플릭스에 있길래 또 봤네요. 주인공은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 이 영화는 음악이 너무 좋아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아 하루 종일 듣기도 했습니다.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출근합니다. 아내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남편. 그는 슬픔도 분도노 아닌 공허함이라는 상실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냉장고, 컴퓨터, 화장실 문까지 온갖 물건들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데몰리션 제이크 질렌할
영화 데몰리션 / 제이크 질렌할

영화의 시작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데이비스와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그의 아내 줄리아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받고 있는 아내를 기다리며, 그는 자판기에서 초코바를 꺼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판기가 고장이나 돈만 먹고 초코바를 못 먹게 됩니다. 아내가 위독해 수술 중인데 초코바라니.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엉뚱하고 사소로운 것에서 오는 이 남자의 행동에서 감정 변화를 담아냅니다. 

 

아내가 죽고 데이비스는 초코바 자판기 회사에 고객 불만서를 작성합니다. 그것도 이성적으로 정성 들여. 아내가 죽었는데 말이죠. 고객 불만서에는 자판기에 대한 불만보단 자신의 심정을 적어 나갑니다.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지,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는 등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서 써나갑니다. 

영화 데몰리션
영화 데몰리션

데이비스는 낯선 여자의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입니다. "편지를 보고 울었어요. 혹시 얘기 나눌 사람이 필요한가요?" 그 뒤로 자판기 불만의 항의가 아닌 캐런과의 대화를 통해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됩니다. 캐런과 캐런의 아들 크리스를 만나면서 데이비스는 위로받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감당할 수 없는 상실 때문에 감정 회로가 망가진 데이비스에게 변화가 시작됩니다. 

데몰리션 최애 씬
데몰리션 최애 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헤드폰을 낀 데이비스는 미친 듯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데이비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 같았습니다. 데이비스의 고장난 감정은 나사 하나까지 분해하는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데이비스의 장인의 "뭐든 완전히 다 뜯어봐야 문제의 원인이 보이게 돼"라는 조언대로 냉장고, 컴퓨터를 완전히 부수고 뜯어 놓은 뒤 그 속을 들여다보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감독은 데이비스 집에 데이비스의 현재를 투영한 듯 보입니다. 카렌이 그의 집을 멋지다고 칭찬하자 그는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말하는데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던 정말 겉만 번지르르하던 그는 감정이 북받친 듯 신혼집을 파괴합니다. 근데 그게 묘한 통쾌함이 있습니다. 

영화 데몰리션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영화 데몰리션 /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영화는 제각기 다른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미친 듯 포효하고 슬픔에 절절한 통곡이 아닌 무감각하게 동요하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본모습은 감추고 살아가던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여겨졌습니다. 감정이 고장 났지만 고장 난지도 모른 채 살다 완전히 어긋나 버려 그제야 그 속을 들여다보게 되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영화. 영화 제목처럼 파괴된 후 찾게 되는 진실. 감정의 가면을 쓰고 사회에 맞는 나로 살아가느라 버겁다면 데몰리션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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